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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와 종교를 관통하는 “낭중지추囊中之錐 경고”

- 정치도 종교도, 더 이상 성역일 수 없다
- 낭중지추의 시대, 위선은 반드시 드러난다

시민행정신문 이준석 대기자 |  정치와 종교는 오랫동안 서로 다른 영역인 듯 말해져 왔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서 두 영역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말은 넘치고, 책임은 사라졌으며, 권위는 남았으나 신뢰는 무너졌다.

 

 

정치는 국민을 말하지만 국민 앞에 서지 않고, 종교는 신과 양심을 말하지만 스스로의 행위 앞에서 침묵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공공 윤리의 민낯이다. 옛말에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끝내 밖으로 튀어나온다. 이 말은 지금의 정치와 종교를 향한 가장 정확한 경고다.

 

정치는 여론과 언어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고 믿고, 종교는 신성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의 영역 밖에 설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그 어떤 포장도, 그 어떤 신성의 외피도 용서하지 않는다. 정치의 문제는 정책의 실패보다 정직의 실종에 있다. 틀렸다는 말은 사라지고, 설명과 해명만 남았다. 책임은 분산되고, 결정자는 흐릿해졌다. 국민은 선택의 주체였지만 결과 앞에서는 늘 방관자로 밀려난다.

 

종교 역시 자유롭지 않다. 자비와 사랑을 말하면서 권력 앞에서는 침묵하고, 윤리를 설파하면서 내부의 부패와 위선에는 관대하다. 신의 이름은 자주 불리지만 그 이름에 합당한 자기 성찰은 드물다.

 

정치가 종교를 필요로 할 때 정치는 도덕을 도구화하고, 종교가 정치를 필요로 할 때 종교는 신앙을 권력화한다. 이 위험한 결탁의 끝에는 항상 시민과 신도의 상처가 남는다. 정치는 종교의 권위를 빌려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종교는 정치의 무대를 통해 세를 확장하려 한다. 그러나 이 순간 정치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종교는 신앙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정치와 종교가 동시에 신뢰를 잃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둘 다 말은 앞서고, 행위는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둘 다 비판을 요구하면서, 비판받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역은 없다. 정치도, 종교도 공공의 영역에 서 있는 이상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 기준은 복잡하지 않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가, 권한만큼 책임을 지는가, 약자를 향하고 있는가. 낭중지추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존재는 송곳을 숨길 수 있다고 믿는 권력이다.

 

언어로, 제도로, 신성으로 시간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 끝은 더 큰 붕괴로 이어진다. 정치는 더 이상 “차선”이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없고, 종교는 더 이상 “신의 뜻”이라는 말로 현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정치에는 책임을 감당하는 용기가, 종교에는 권력과 결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주머니 속 송곳을 숨길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 일, 그 불편한 질문에 회복은 시작된다.

 

정치와 종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한, 공동체의 혼란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책임은 결국 오늘의 선택을 한 정치와 종교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낭중지추는 예언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